이탈리아 여행 | 16일차 | 2023. 7. 11 (二)
Rome | Vatican City | 박물관 | 지도의 방 | 라파엘로의 방 | 시스티나 성당 | 천지창조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있는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긴 전시 공간으로 폭 6m, 길이 120m 입니다.
'지도의 방'에 전시된 지도들은 16세기의 이탈리아 영토와 교회의 영지를 구분하기 위해 그려졌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13세(라틴어 :
Gregorius PP. XIII, 이탈리아어 : Papa Gregorio XIII)는 로마 카톨릭 성직자이자 수학자, 지리학자, 천문학자이며 우주학자였던 '이냐치오 단티(Ignazio Danti, 1536-1586)에게 총감독직을 맡겨 '지도의 방'을 만들게 합니다.
지도들은 이냐치오 단티(Ignazio Danti)의 도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이탈리아의 뛰어난 지도 제작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31년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o VIII)는 독일의 지리학자 루카 홀스테니오(Luca Holstenio)에게 의뢰, 지도를 완성하고 새로운 장식으로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벽 좌우에 있는 40장의 지도는 이탈리아 여러 지방과 '그레고리오 13세' 시절 소유 영토의 지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출구 안쪽 문 위에는 그레고리오 13세와 우르바노 8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지도의 방'을 지나 '라파엘로의 방'에 들어섭니다. '라파엘로의 방'은 총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서명의 방(1508-1511)' 작업을 시작으로 '엘리오도루스의 방(1511-1514)', '보르고 화재의 방(1514-1517)', '콘스탄티누스의 방(1517-1524)' 순으로 작업을 진행하던 라파엘로는 1520년 37살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의 방'은 제자들의 손에 의해 뫈성됩니다.
먼저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el Borgo)' 입니다.
이어서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e)'
여기에서 우리는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을 만나게 돕니다.
이어 '콘스탄티누스의 방(Sala di Constantino)'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그때뿐이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세하게 들여다 보기는 했답니다.
'엘리오도루스의 방(Stanza di Eliodoro)'은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스치고 지나,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 입장 대기,
이곳은 입장하기 전 특별(?) 교육이 진행됩니다.
내부 정숙은 물론이거니와 사진 촬영 불가 등등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최고의 핫스팟,
와우~ 정말 사람들 미어집니다. 어깨와 어깨가 마주 닿아 자연스럽게 밀려 들어갑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하나같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는 열심히 천장을 바라봅니다.
인류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되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함이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얽힌 이야기,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비어있던 '시스티나 성당 천장'과 제단 뒤 벽면을 새롭게 장식하기 위해 브라만테(Donato d´A´gnolo Braman´te)에게 작업을 의뢰하는데 이때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를 추천하게 됩니다. 경쟁 관계이자 사이가 극도로 나빴던 미켈란젤로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일을 맡게 되면 당연히 실패할 것이고 동시에 그의 명성도 추락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였습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초청장을 보내나, 미켈란젤로는 초청 수락 조건으로 "교황이 요구한 비어있던 벽 만이 아니라 천정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것"이며, "그림의 주제와 스타일에 대한 일체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요청 이외의 어떤 물리적 지원 없이 혼자 작업할 것"을 제시, 교황의 수락하에 1508년 5월 10일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 후 혼자 천장을 올려다 보며 진행한 4년(1508-1512)의 작업은 고톰 스러웠을 것입니다.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의지하여 하루 15시간씩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하는 고된 작업,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혼자서 4년만에 이 대작을 완성해 냅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미켈란젤로가 이같은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바로 신심(信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습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그 점을 읽고 있었겠지요.
'천지창조'라고도 불리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경외심마저 들게합니다.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s),
교황 바오로 3세의 명으로 61세 노년의 미켈란젤로가 6년(1536-1541)에 걸쳐 완성한 작품, 세상의 종말 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여 세상시작부터의 전인류를 심판하게 되는데,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나와 선과 악을 저울질해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포스팅이 좀 길어졌네요.
이제 바티칸 시국(Vatican City)의 하이라이트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으로 건너 갑니다.
내일부터는 로마 시내와 유적지를 둘러 볼 겁니다. ^^